무참히 살해된 민간인 대학살 현장.

 사진 이야기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수도인 다르에스살렘. 지구 반대편에서 탄자니아 앤가라 루콜레 난민캠프(해발 2200m)를 가기 위해서는 태국을 거쳐 다르에스살렘을 경유해 다시 유엔난민기구 전용기로 갈아타야만 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렘에서 국내선으로 갈아 타고 엠완자까지 가는 도중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과 구름 밑 초원이 한 눈에 보였다. 킬리만자로산은 좀 처럼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UNHCR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탄자니아 초원은 평화로워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생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수용되어 있기도 하다.  

               

앤가라 루콜레 난민 캠프. 서쪽으로 르완다 국경과 동쪽으로 부룬디 국경이 인접해 있다. 필자는 아프리카에 취재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르완다 참상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참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저녁 6시 이후에는 통금시간으로 UN직원 숙소를 벗어 날 수 없게 되어 있다. 곳곳에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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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4일동안 묵었던 유엔직원 숙소. 해발 2200m에 있는 숙소는 산 갈대로 엮어 만들었으며,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 밤에는 겨울옷을 입어야만 했다.>


르완다 국경을 가기 위해 며칠동안 고민한 끝에 목숨은 책임질 수 없다는 담보로 유엔난민기구 책임자를 간신히 설득시킨 뒤 택시를 빌려 탔다. 왕복 30달러였다.


난민캠프에서 수 많은 구릉을 넘어 20km 달하는 르완다 루수모(RUSUMO)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


가는 길에 택시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우며 한 사람을 합승하려 했다. 합승하려는 사람과 운전기사가 갑자기 강도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무조건 'NO'를 외치며 르완다 국경까지 달려갔다.  해거름녁 구릉속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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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국경을 가는 도중 구릉속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국경에 도착해 국경수비대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사진촬영 허가를 받았다. 걸어서 르완다 국경을 향해 걸어갔다.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1994년 3개월 동안 르완다 투치족과 후투족의 세력다툼으로 르완다 인구 3분의 1인 80만 명이 무참히 살해된 민간인 대학살을 비롯해 내전 중에 150만명이 학살된 뒤 300만명 이상이 주변국으로 난민으로 떠돌았던 참상의 현장이었다.


필자는 르완다 루수모 국경 다리에서 숙연해졌다. 비명속에 간 그들의 죽음과 영혼이 담겨져 있는 카게라(Kagera)강 위에 서 있었다.


르완다 난민들의 처함한 광경이 있었던 한국판 ‘돌아오지 않는 다리’인 루수모 다리. 르완다와 탄자니아 국경을 사이에 두고 길이 50m, 폭 5m에 불과한 다리를 지나 르완다 국경까지 걸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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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에서 르완다 국경을 바라본 모습. 지금은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당시 르완다 사람들은

루수모 다리를 넘어 오지 못한 채 수 십만명이 루수모 다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수 만명의 르완다 사람들이 내전을 피해 탄자니아로 넘어왔지만 당시 탄자니아 정부는 50만명(정확한 수치는 아님)은 국경을 넘어오지 못하게 르완다 사람들을 루수모 다리로 넘어온 난민들을 다시 르완다로 밀어 버렸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참상이 빚어졌다.


르완다 사람들의 억울한 비명이 있는 카게라 강에서 거센 폭포의 함성이 이들의 넋을 대신 달래듯 폭포의 거센 물살은 차라리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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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수모 다리 밑으로 흐르는 카게라 폭포와 강물 소리는 죽은 이들의 비명소리에 가까웠다.>


국경과 1분 거리에 있는 이들의 위령비를 간신히 찾아냈다. 이들의 위령비에는 당시 사망한 한 르완다 가족이 이곳을 찾아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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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 아래 비문에는 잡풀과 흙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먼지를 걷어 내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 917명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묻혀 있다. 그들은 1994년 1995년 르완다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의 죽음은 카게라강에서 무참히 내던져졌다. 탕가니카 기독교 난민지원센터 루테란 세계연맹 NGO 단체들이 그들의 주검을 일부만 찾아냈다. 하지만 수 많은 다른 주검들은 강에서 찾아내지 못했다.

신이시여! 그들의 영혼이 평화롭게 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신이시여! 학살의 생존자들이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열 두달 동안 사진기자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아세요?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토깽이♬ 2010/01/13 09:31 수정/삭제

    ㅠㅠ

  2. 나그네 2010/01/13 10:45 수정/삭제

    예전의 그 르완다군요...아프리카의 슬픔을 알 수 있는 좋은 글 잘봤습니다.

  3. 소나무 2010/01/17 23:43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4. 美佐 2010/01/13 19:53 수정/삭제

    사진속에 마음이 그대로 담져 살이있나 봅니다. 위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그렇게 슬퍼지고 아픕니다.
    어디에나있는 산과 계곡 물이건만.....

  5. 소나무 2010/01/17 23:43 수정/삭제

    제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며,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세바스치앙 살가두 전시장에 가면 더 참혹하고 비극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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