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귀성

 사진 이야기

2월1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한 중국 여성의 눈물겨운 귀성 사진은 많은 사람의 눈을 붙잡았을 것이다. 지고 안고 들고 가는 여인의 모습은 고향으로 향하는 인간의 귀소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웅변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대단하지 않은가. 고향이 뭐길래 저렇게 지고 안고 들고 가는 것일까. 중국 난시성 광창 기차역에서 AP기자에게 잡힌 젊은 중국여성의 표정과 발걸음에는 '무엇이 가로막든 고향에 가겠다'라는 의지가 충만해 보인다. 더 가슴을 뭉클이게 하는 것은 여인의 남루한 옷차림과 대비되는 밝고 깨끗한 아이의 옷이다. 모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사진이라해도 좋을 그런 사진이다.

 

25억명이 음력 설인 춘절을 맞아 대이동을 한다는 중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지만 우리도 얼마 전까지 이런 비슷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곤 했다.


아이폰 시대인 지금은 변해 볼 수 없는 광경이 돼버렸지만 흑백TV 조차도 동네에 한대 뿐인 시절 우리네 형과 누나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들은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고 만원 버스,만원 기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향했던 적이 있었다.


동아일보 데이터 베이스에서 찾은 귀성 모습을 모아봤다.

                                            

                        사진=동아일보

1967년 9월16일 서울역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40여년전의 우리네 역사다. 끝도 없이 이어진 귀성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에 가져 갈 선물 만큼은 부서지지 않도록 머리 위로 들고 있다. 고향에서 기다릴 부모 형제들에게 줄 귀한 선물 만큼은 자신의 몸이 부서지더래도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가방을 위로 향하게 했으리라.

 

                               사진=동아일보

 

6.25때 피난 열차가 아니다. 1968년 10월5일 촬영된 호남선 임시열차안의 모습이다. 통로에 발을 놓을 수 없는 탓에 짐칸에까지 올라 갔을테지만 저런 불편한 상태로 열 몇시간을 어떻게 갔을지 염려 섞인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정하게 머리를 깎은 남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조상님 차례 모시는 일에 있어서 세신(洗身)과 이발은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명절 아니라 부모님 제사 때도 바쁘면 안가는 세태가 일반화 된 오늘날, 추석이라고 짐짝 취급을 당하며 고향으로 향했던 저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진=동아일보

1970년 9월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는 얌체 귀성객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버스안에 빈좌석이 많은 걸로 봐서 창문으로 얼른 들어가 자리를 맡기위해 창피함을 무릅쓰는 것 같다. 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좌석 쟁탈전에 참여했으니 고향 가는 길이 편하다면 동가홍상일 것이다.

 

                        사진=전민조

귀성을 나타내는 사진이기도 하지만 시대상이 짙게 투영되기도 한 걸작 도뮤멘터리 사진이다. 존경하는 전민조선배가 찍었다.

 

전선배의 설명에 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기에 그대로 옮긴다.

 

"어려운 서울살이. 잠시 고향가는 길도 난감하기만하다. 구정을 앞두고 새벽부터 고향가는 버스표 한장을 사려고 줄을 서봤으나 이리저리 떠밀리고 경찰까지 혹시 `새치기`가 아닌가 하고 끌어 내려하니 서글프기만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향한 의지는 列속으로 密着되어간다." 1978. 1.31./강남고속버스터어미널

 

                                  사진=동아일보

앞서 봤던 사진속의 혼란은 없다. 회사가 책임지고 귀성을 해주니 아귀다툼을 벌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버는 사람들이기에 고향으로 가져 갈 선물들이 그야말로 바리 바리 한짐씩이다. 1978년 9월16일 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사진=동아일보

1987년 10월 경기도 벽제 부근 국도에서 촬영 된 사진이다.

 

"거북걸음 차량행렬
이번 추석 귀성길에는 고속도로 국도마다 차량홍수를 이루면서 중앙선 침범, 끼어 들기등 무질서한 운행으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혼란을 빚었다. (碧蹄국도.1987년 10월7일) "

 

이라는 사진설명이 있는 걸로 미뤄볼 때 무질서를 탓하는 고발사진인것 같다.

 

지금 보니 무질서 보다는 10년 사이에 우리네 귀성길이 '확'달라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동아일보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1982년 10월3일)"

 

이 사진에 붙은 설명이다.

 

신문에 실릴 사진이기에 붙은 당연한 설명이지만 귀거래사를 읊었던 도연명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런 모습을 봤더라면 어떤 귀거래사를 부를까.

 

앞서 봤던 모습들은 이제 보기 힘들다. 잘 살고 편해졌기 때문이다. 하루를 꼬박 가야했던 고향은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할 만큼 가까이 있다.

 

고향이 멀리 있을 때 우리에게 고향은 '힘'이었다. 고향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불끈 솟았다. 그 힘으로 살았다. 고향이 가까운 지금 우리는 고향이 주는 힘을 받지 못한다. 변했기 때문이다. 고향이 없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잘못이었다. 고향은 항상 그대로 있었다. 굽어진 소나무 같은 고향이 중국 여인의 처절한 귀성 모습에서 다시금 빛을 발했다. 울컥했다.굽어있으니까 말이다. 고향은 그런 것이다.

 

아...고향이여...

흐르는 강물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RSF 2010/02/02 11:07 수정/삭제

    불과 몇 십 년전의 일인데도 요즘 사람들 눈에는 딴 세상 일처럼 보여집니다. 정말 우리나라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명절 대이동이라는 우리만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긴 합니다.

  2. 청계1가 2010/02/02 16:56 수정/삭제

    명절힘들어요번엔 우리집에서 식사 마련하는 순서인데무려 최하60만원에서 백만원정도 든답니다.대가족 3일 먹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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