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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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소리꾼 장사익. 웃는 모습이 세속의 영달로부터 벗어난 소박함만있다.

차를 달이며 대화를 나누는 장사익씨. 그의 노래를 듣고 나면 머리끝 한쪽이 시려오거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10가지를 죽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맨 마지막에 쓰인 ‘태평소’를 찍었다. 1980년대 초부터 거의 독학으로 배워둔 태평소를 한 3년간 죽기 살기로 불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한 푼도 돈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 시켜만 달라”고 졸라 평소 팬으로서 인연이 있던 이광수 사물놀이 패에 합류했다. 태평소는 사물놀이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악기였지만 얼마 안 가 그의 태평소는 ‘화룡점정(畵龍點睛)’ 격 악기가 됐다. 전주대사습놀이와 전국민속경연대회 등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그의 진가는 특히 사물놀이 끝에 벌어지는 뒤풀이에서 드러났다,
“‘봄비’ 그게 18번이구, ‘님은 먼 곳에’ ‘동백아가씨’ 등을 신명나게 불러 제꼈쥬. 아주 끝내줬슈. 무대에선 내가 주인공이 아니지만 뒤풀이에선 내가 완전 스타여.” 첫 직장이 서울 종로2가여서 근처인 낙원상가 학원에서 3년 동안 노래를 배운 것이 ‘가수 수업’의 전부였던 그다.

그의 환한 웃음에서 티끌을 찾기는 힘들다.
그는 단순한 가수(歌手)가 아니다. 소리꾼 또는 민중 딴따라라고 해야 한다. 단순히 한국적이고 서민적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제도권 안에 있지 않으면서 제도권을 압도하는, 또 그 이상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그의 노래에는 있다. 조용필이 국민가수 또는 가왕(歌王)이라면 그는 토종가객(歌客) 또는 가혼(歌魂)이라고 불러야 옳다.

홍지동 자택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장사익. 창너머로는 북악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렬하게 장사익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노래는 정성인데, 지가 기를 쓰고 피 토하듯 정성을 다해 노래하는 것을 좋게 봐주시는 것이겠지유.”
―노래는 슬프지만 얼굴은 태평합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됩니다. 즐겁고 슬픈 얘기들 엮어 노래를 부릅니다. 세상이 참 아름답고 살 만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더군요. 진면목(眞面目)은 무엇인가요.
“전 늘 즐거워유. 노래를 부르기 전엔 얼굴을 찡그렸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후 얼굴이 펴졌슈. 아무래도 웃는 사람이 복 받고 일거리도 생기는 게 아니겄시유. 지 노래가 대부분 슬픈 건 사실이지만 슬퍼서 짜증나는 게 아니라 울고 나서 후련해지는, 뭐라나 카타르시스가 된대유. 그걸 ‘생산적 슬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유.”
―자신의 음악적 미래를 낙관하시나요.
“예. 지는 아흔까지 노래를 부르겄시유. 지금은 힘과 테크닉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때는 저만의 ‘노인네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즐겁구먼유.”
―국내 가수 중에는 누구를 치나요.
“생존해 기신 분 중에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선생님이지유. 돌아가신 분 중에는 배호 선생님이 최고여. 그분이 스물아홉에 돌아가셨는데 그 나이에 부르신 노래를 지금 내가 이 나이가 돼서 불러도 그 필(feel)이 안 나오는구먼유.”

이 글이 바로 장사익체의 글이다. 장씨는 서예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최근 할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이 입은 이상봉 디자인의 셔츠에도 그의 서예글씨가 새겨져 관심을 모았다. 노래만큼이나 글씨도 곧고 힘차다.

장씨는 내년 초 미국 등 해외에서 콘서트를 열고 곧고 힘찬 한국 소리의 맛을 알릴 계획이다.
월급쟁이, 가구점 총무, 카센터 직원 등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다섯의 늦깎이로 데뷔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가수다.
―직장을 잃거나 은퇴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지 경험에 비추어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유. 만약 지가 처음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했으면 오늘의 지는 없을거구먼유. 절박할수록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넉넉하게 생각해야 해유. 사람은 누구나 꽃을 피울 때가 있다구 믿어유. 그게 인생이여유.”
그의 고음을 따라가기 힘든 것처럼, 그의 생애를 본떠 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날은 온다.
(오명철 전문기자의 인터뷰 발췌)

장사익,그가 영원한 우리들의 소리꾼으로 남기를 기원해 본다.






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정말 멋진 인생...45세에 가수데뷔라저도 힘내야겠네여
정말 힘내세요.인생 별것 있나요.
친한 선배가 이 분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시던데...
어떻게 하면 장사익님처럼 욕심을 버리고 소탈하게 살수 있을련지...
장사익류의 풍류, 요즘의 막걸리 문화와 이어질것도 같습니다만
분위기가 정말 비슷하네요